제6회 동래구 우하박문하문학상 전국 공모전 수상자 및 작품, 심사평을 붙임과 같이 공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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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동래구 우하박문하문학상 심사평
심사위원장 최홍석
심 사 위 원 김정화, 정경수, 정인호
<수필>
우하 박문하 선생님은 수필 문학의 큰 스승이시다. 문학의 변두리를 서성이던 수필을 단숨에
중심 영역으로 끌어올린 분이다. 선생님의 작품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와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동래시장 앞 100여 미터 거리에 있었던 민중병원에서 환자 진료와 수필
창작에 헌신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새삼 그립다. 선생님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동래구에
서 시행하는 이 상이 공정과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였음을 밝혀둔다.
제6회 우하박문하문학상에는 전국에서 많은 신인들과 기성작가들이 응모하였다. 수필 부문에
는 89명의 작품 267편이 접수되었고, 작품평론 부문에는 네 분이 제출한 4편이다. 지난해보다
수필은 99편, 평론은 4편이 줄었다. 더 많은 작품이 접수될 수 있도록 더 큰 동기부여와 홍보
가 필요하다. 상의 권위에 빛을 더하고 작품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
문이다.
심사는 1, 2차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1차 심사에는 심사위원을 2그룹으로 나누고 각 팀에서 5
명의 작가가 제출한 작품 30편을 2차 심사에 올렸다. 2차 심사는 심사위원들의 활발한 논의 끝
에 2명의 작품을 선정하고 대상과 최우수상의 순위를 결정하였다.
심사기준은 주제의식과 성찰의 깊이, 문학적 개성과 창조적 발상, 그리고 작품의 문학적 완성
도에 두었다.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었는가, 익숙한 소재
를 자신만의 시선과 언어로 새롭게 형상화하고 있는가, 나아가 문장과 구성, 표현이 유기적으
로 어우러져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이루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 결과 이 기준에 가
장 합당하다고 판단된 응모작이 「도래솔」과 「그늘 한 점」이다. 아울러 두 분이 함께 응모한 작
품들도 수상작에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다.
대상으로 선정한 「도래솔」은 쓰러진 소나무의 풍경에서 출발하여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삶
을 성찰한 작품이다. 무덤을 덮은 소나무를 ‘푸른 이불’로 형상화하고, 사람들이 놓고 간 돌
과 새로 돋아난 어린 소나무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는 죽음과 애도의 의미를 생명의 순
환으로 확장하였다. 감각적인 묘사와 절제된 서정성, 풍경과 내면을 긴밀하게 연결한 형상화가
돋보인다.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인 삶의 의미로 승화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 일상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우리말의 고운 어휘들을 찾아내어 이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품격을
드높였다. 이와 같은 작가의 노력이 모국어를 한층 더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문학인 모
두가 되새겨야 할 기본이다. 함께 제출한 작품 <바다의 안부>와 <나무의 시선>도 당선작과 별
차이가 없는 수작이다. 무엇보다도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아름답다.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그늘 한 점」은 공원 벤치의 한 장면에서 출발하여 ‘그늘’이라는 소
재를 삶의 고단함과 상처, 위로와 연민을 아우르는 상징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특히 낯선 한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선이 자신의 상처와 아버지의 삶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타인의 고통
을 헤아리는 공감의 의미로 귀결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었다. 하나의 중심 이미지를
일관되게 밀고 나가면서 인간에 대한 성찰로 넓혀낸 점이 돋보였다. 함께 제출한 두 편의 작
품, <노둣돌, 삶을 품다>와 <무릎의 의미>도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과 큰 차이가 없는 수작
이다.
아깝게 선에 오르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해 올리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수상자들에게는 더욱 정진하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작품평론>
‘제6회 동래구 우하박문하문학상’ 평론 부문의 응모작은 총 4편으로 기대한 것과는 달리
매우 저조하였다. 응모 작품 또한 전체적인 수준이 균질한 평균을 유지하지 못하였음을 밝혀둔
다. 평론은 학술적 글쓰기에 가깝다. 하나의 주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치밀하게 검증
해 나가는 고차원적 사유 과정을 요구한다. 심사 기준은 박문하의 작품을 얼마나 새롭게 읽어
내었는가를 기본으로 파악하였다. 이어서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 현재 시점의 맥락 파악, 개
념의 적절성, 문장의 적합성 등을 주요 기준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이번의 응모작들은 평론 작품에서 요구하는 논지의 명료성, 분석의 치밀성, 해석의 독
창성 등에서 다소 아쉬운 수준을 보였다. 작품의 줄거리나 내용을 충실하게 소개하고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인 글이 있는가 하면, 특정한 관점이나 개념을 제시하면서도 이를 구체적인 텍스트
와 충분히 연결하여 논증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이미 수상한 작품의 주제나 이론을 답
습하는 데 그쳐 박문하의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거나 현재적 의미로 확장하는 데 미
흡하다고 판단하였다. 또, 과다한 원문 인용에 많은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분석의 불균형이 두
드러진 부분도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작품을 세밀하게 읽어내려는 태도가 돋보인 한 편의 응모작에는 심사자들이 오래
도록 고민하였다. 그러나 원고 전반에서 유사한 문장 구조가 지나치게 반복되면서 문체의 개성
과 비평적 긴장감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점은 중요한 한계로 판단되었다. 이 작품은 세밀한
텍스트 독해와 개념화의 가능성은 보여주었으나, 반복되는 문장 구조로 인해 비평적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올
해 평론 부문에서는 수상작을 선정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향후에는 박
문하의 작품을 새롭게 읽어내는 독창적인 시각과 이를 뒷받침하는 치밀한 논증, 그리고 필자
고유의 문체가 한층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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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동래구 우하박문하문학상 전국 공모전」 수상작
○ 수상자 및 작품
구 분 성 명 작 품 명
① 도래솔
대 상 조현숙 ② 바다의 안부
③ 나무의 시선
수필
① 그늘 한 점
최우수상 허정진 ② 노둣돌, 삶을 품다
③ 무릎의 의미
※ 작품평론 부문 수상자 없음
목 차
수상작
수필 대상
· 도래솔 ······························································· 1
· 바다의 안부 ······················································ 3
· 나무의 시선 ······················································ 5
수필 최우수상
· 그늘 한 점 ························································ 7
· 노둣돌, 삶을 품다 ············································· 9
· 무릎의 의미 ···················································· 1 1
수필 대상
도래솔
너덜겅의 삶이 고단했을까? 바윗돌을 넘나드는 소나무 뿌리마다 툭툭 심줄이 불거졌다. 깊숙
이 뿌리 내리지 못한 맨발들이 갈지자로 자드락길을 움켜쥐고 있다. 힘겨운 발등이 그려내는
시린 수묵화 위로 돋을볕이 발을 내린다.
오솔한 숲으로 들어서니 생살이 찢어지고 허리가 꺾인 소나무가 길을 막는다. 세상을 깨우느
라 수선스러운 봄의 등쌀이 고까웠을까. 한창 봄빛이 번지던 삼월의 끝자락에 눈이 내렸다. 재
채기처럼 터지던 꽃망울들이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봄눈은 연둣빛 세상을 누르고 보란 듯이
나뭇가지마다 새하얀 눈꽃을 피워냈다. 눈송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소나무들이 툭툭 부러지
기 시작했다.
햇살이 부지런히 숲의 물기를 말린다. 눈발에 숨죽였던 숲도 새들의 날갯짓에 같이 퍼덕거리
는데, 길섶에 누워버린 생은 존재의 시간을 비우며 이내처럼 흩어지고 있다. 소나무 찢어진 허
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더니 아직 떠나지 못한 솔향이 코끝에 서린다.
명주바람 불어오는 숲길이 깊어진다. 잡목과 덩굴에 뒤덮여 숨은 듯 들앉은 무덤 위에도 키
큰 소나무가 쓰러져 있다. 돌보는 이도, 비석도 없는 무덤 옆에서 지루한 평화를 함께 누리던
도래솔이다. 봉분 안에 누워있는 주검이 먼저였는지, 소나무들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저 바람에 닳아버리는 세월 동안, 저 무덤과 함께 한 건 언제나 도래솔이었다.
솔잎 무성한 줄기와 가지로 무덤을 덮은 소나무, 마치 푸른 이불 같다. 머리로는 해독이 안
된다. 어떻게 쓰러지면서 가장이 전체로 무덤을 덮게 된 것인지. 어쩌면 저 소나무는 뿌리가
뽑히는 순간, 그가 밤마다 불러냈던 외로운 혼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발길도, 눈길도
붙잡지 못했던 무명의 봉분이 여기 있다고, 이 무덤을 지켜달라고 마지막 당부라도 하듯 주검
위에 한 생을 뉘었다.
눈설레 치던 봄밤, 밤새도록 생살이 찢기고 꺾이는 소나무의 비명이 온산을 쩡쩡 울렸겠지.
이 산인들 제 살갗이 터지고 뼈마디들이 퉁겨 나갈 때마다 같이 울부짖지 않았을까. 몸통을 늘
리고 뿌리를 뻗어가던 시간, 부정한 것의 범접을 막으며 무덤을 지켰을 저 소나무, 그가 떠나
는 길을 무덤 속 영혼도 애도하고 배웅했을까?
한 주검이 다른 주검을 덮으면서 오히려 생의 환한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이 우두커니 서 있
는 내게 같이 소나무를 치우자고 한다. 소나무가 무덤을 누르고 있으니 무거울 거라고.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이불 같은데.” 생뚱맞은 웅얼거림에 그러마, 해놓고는 몇 발짝 못 떼고 주
춤, 그는 가던 길을 돌아서고 만다.
기어이 무덤으로 간 남편이 두 팔로 소나무를 부둥켜안고 힘을 준다. 하지만 처음부터 제 깜
냥으로는 어림없는 무게인지 소나무는 꿈쩍도 안 한다. 머쓱해진 남편이 옷자락에 딸려 온 보
굿을 털어낸다. 비늘 같은 껍데기가 잡풀 위로 스르르 내려앉는다.
가랑잎 서걱대는 초겨울, 아버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셨다. 겨울의 문턱에서 유
별스럽게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상복 위에 걸쳤던 스웨터를 벗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질끈
- 1 -
눈을 감아버렸다. 볕살이 질책처럼 따가웠다. 기억의 실타래가 끊기고 삭았어도, 천국에 갈 준
비가 되었느냐는 목사님의 물음에는 도리질했다던 아버지.
아버지의 육신이 뼛가루가 된 채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온기는 항아
리를 감돌며 올라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아버지의 정기도, 생각도, 천국일지라도 아직은 가지
않으리라던 바람도, 바람에 흘러갔다. 구름처럼 흩어졌다.
잡초를 이고 있는 쑥대강이 무덤을 볼 때마다 돌보지 않는 자손을 탓하곤 했건만, 나는 정작
아버지의 영혼이 육신을 빠져나올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일을 했거나 책을 읽었거나 웃었거
나 걸었을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었어도 아버지는 그 안에 없었다. 원망을 품는 일의 무거움
을 아니까 차라리 무관심으로 아버지를 밀어냈다고, 내 뿌리 없는 시간의 당위성으로 삼았던
못남과 못됨이 저릿하다.
언젠가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나는 없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맏이니까 그걸 잊지 마라. 그
랬으면서 없는 사람처럼 군다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와의 시간이 어찌 한 문장, 한 문단
으로 요약될 것인가. 나도 없는 자식처럼 굴었던 수많은 나날이 아프다. 없다고 없는 건가. 아
버지의 성정이, 모습이 내 속에 남아 언뜻언뜻 튀어나오는데. 요양병원 창에 걸린 하늘을 무연
히 바라봤을 아버지. 찾지 않는 자식을 떠올려보려고 안간힘 쓰다가 그리움을 하나씩 지워내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심 쓰듯 찾아간 요양병원에서 당신을 덮고 있던 홑이불 한 자락 꼭
꼭 여며준 게 다였던 나의 마지막 인사가 아득하다.
잎새들이 햇귀를 찌를 때마다 똑똑, 초록이 떨어진다. 신록이 번지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생기로웠을까. 푸서리에도 길이 났다. 소나무의 혼이 사람들의 눈길을, 발길을 소환했
는지도 모른다. 그새 무덤을 둘러 가며 큼직한 돌멩이들이 반원을 그리며 놓여 있다. 누군가
돌멩이 한두 개 놓고 간 게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둘 보태졌을
것이다. 누구는 그리움을 놓고 갔고 누구는 먼 기억을 더듬어 불러왔을 것이다. 이 산을 오가
면서 구석진 자리에도 눈길을 돌리는 마음보들이 모여 또 하나의 도래솔을 만들어 간다. 나도
너덜겅에 널린 돌멩이 몇 개 주워 반원에 더한다. 아버지를 읽는다.
구새 먹은 고목의 밑동으로 바람이 넘나들고 햇살이 모인다. 솔가리투성이를 용케도 뚫고 나
온 아기 소나무가 발딱 고개를 쳐들고 나를 본다. 이 어린 것은 무탈하게 자라 어른이 될까?
어쩌면 무덤 속, 저 외로운 아비가 자분자분 들려주는 이야기로 제 키를 키워갈지도 모른다.
무덤과 한 몸이 된 소나무 이불은 아직 여일할까.
- 2 -
수필 대상
바다의 안부
밤바다를 뒤적이는 해루질 불빛이 숙소의 통창을 어지럽힌다. 소소리바람에 밀려났던 물살이
너울을 일으키고 바닷속을 뒤집는가 보다. 갯바위를 치는 파도 소리가 머리맡에서 소란하다.
고작 몇 시간 전만 해도 통창 가득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고 좋아서 방방 뛰지 않았던가. 그
시간이 꿈결인 듯하다.
모처럼 다 같이 모였는데 오늘도 큰동생은 가봐야 한다고 일어섰다. 봄이 오는 길목, 연둣빛
물오르는 청량한 산에도 가고 싶고 봄꽃 나부끼는 꽃놀이도 가고 싶지만 어떻게든 함께하려고
저들이 사는 바다 앞에 숙소를 정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저녁 한 끼 오붓이 나누지 않고 동생
과 제부는 또 나설 채비를 한다. 연로한 교인이 아파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한단다.
“엄마를 그렇게 챙겨봐라.” 동생 얼굴에 담긴 미안함을 읽으면서도 기어이 뱉고 말았다.
동생이 엉거주춤, 나서던 걸음을 멈췄다. 한 번 입 열기가 어렵지, 뱉고 나니 쏘아붙이는 것도
탄력이 붙는다. 입 밖으로 나온 속내는 갈퀴가 되어 동생을 후려친다. 그 사람들은 자식이 없
냐, 만날 너희가 돌봐주니까 무슨 일만 생기면 자기 자식들 놔두고 오라 가라 하는 거 아니냐
고 딱딱거렸다.
소소한 일이야 접어두고라도 엄마가 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허리가 부러져 입원했을 때도,
수십 년 정붙이고 살던 시골집을 떠나올 때도 큰동생은 마을의 아픈 노인들이 먼저였다. 가족
에게는 연락해도 못 온다고만 하고, 동생 목소리가 잦아든다. 모르는 건 아니다. 하루 이틀 일
도 아니고. 갯마을 작은 교회 목회자인 제부와 동생 일이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야속한 마음이 없을까. 부모 모시는 일이 노느매기 할 일은 아니겠지만 맏이라고,
가까이 산다고 하나에서 열까지 혼자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며칠 전에도 된 몸살을 앓던
중이라 나서는 게 힘들었지만, 엄마 병원은 가야 하니까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늘 그렇듯 힘
겨워하는 엄마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느라고 내 딴에는 호흡기내과에서 혈액외과로, 순환기 내과
로 대학병원 복도를 정신없이 내달렸다. 바작바작 땀을 흘리면서 달릴 때, 그랬다. 왜 나만 이
래야 하는가. 동생도 나랑 같이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어쩔 줄 몰라서 서글픈 미소만 짓는 동생을 본다. 나와는 연년생, 쌍둥이처럼 같이 컸지만
성마른 나와 달리 마음보가 큰 동생이 내게 양보하는 일이 많았다. 나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
학을 갈 때도 둘 다 4년제 대학을 갈 수 없어서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미대를 포기했던 동생
이다. 재능이 아깝다고 미술 선생님도 안타까워했지만, 제 꿈을 눌러버렸다.
자꾸 뒤척인다. 파도 소리 때문도, 해루질 불빛 때문도 아니다. 쏟아냈으면 시원하기라도 할
것이지, 내가 쏜 화살이 방향을 돌려 나를 쏘아댄다. 믿었던 언니 입에서 쏟아져 나온 화살들
이 얼마나 아팠을까. 이타적 행위에도 보이지 않는 선과 벽이 존재하고, 넘어야 할 산과 멈춰
야 할 지점이 생긴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겠다. 곡해되는 선의를, 누구보다 먼저 이해해 줄 거
라고 믿었던 피붙이에게서 확인했으니 그 마음은 막막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금방 오겠다던 동생은 소식이 없다. 결국 숙소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 3 -
푸른 비린내가 아침을 끌고 온다. 동살이 비껴드는 창 아래 동생 자리는 역시나 비어 있다.
밤새 늙은 신도의 병실을 지켰거나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기도를 갔을 것이다. 그들은 출항과
입항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신도들뿐만 아니라 거친 바다로 나가는 모든 이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기도한다. 만선이든 빈 배든 무사히 돌아와야 내일의 바다를 기약할 수 있으니
까. 눈뜨는 새날마다 달구리도 되기 전에 치열한 생존의 바다로 나가는 갯마을 사람들이 어떤
파랑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기를, 아무리 희망에 부대껴도 희망을 놓지 않길 기도한다.
동생네는 부임 첫해부터 혹독한 바다의 신고식을 치렀다. 그해 여름, 태풍과 너울이 온종일
허허바다에서 거친 망나니 춤을 추어댔다고 한다. 사택의 꽉 닫힌 문을 뚫고 들어와 난장을 만
들어 버리고 어선 수척을 떠내려 보내고야 물러났다. 바다와 어깨를 겯고 살아야 할 앞날이 막
막하다더니 동생은 어느새 넉넉한 바다를 품고 있다.
엄마 어깨가 간단없이 떨린다. 간밤을 설쳤을 것이다. 당신 앞에서 함부로 속내를 드러낸 큰
딸 때문에 가족 모임이 쓰라렸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작은 딸과 사위랑 마음 놓고 정담을
나누지 못한 것도, 그들이 늘 고생만 하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을 것이다. 이 딸도 맞고 저
딸도 맞다. 엄마 속이야말로 시퍼런 파도가 치고 너울이 굼실댔을 것이다.
전복죽을 사서 동생네로 가자 했더니 엄마 얼굴이 비로소 환해진다. 동생 집으로 들어가다가
한 노인과 마주쳤다. 이 마을 유일의 해녀라고 한다. 손수 채취한 백합을 한가득 가져왔단다.
고생하는 사모 몸보신하라고 늙은 몸으로 장만한 것들을 이고 지고 왔단다. 바닷물에 해감을
했다는 백합이 보얗다.
“언니야, 우리 이렇게 살면서 애들 키우고 공부시켰어. 다들 반듯하게 자라서 제 몫 다하고
있잖아. 바다를 터전 잡고 사는 이들이 그 바다로 우리를 이만큼 살게 해준 거야.”
이제 늙은 동생을 본다. 연년생이라 엄마 젖도 나보다 많이 먹고 큰 게 왜 그리 약한지 모르
겠다. 만날 어디가 아프길래 얼굴이 또 상했냐고 했더니 동생이 싱그레하면서 말한다. 박 서방
은 날마다 이쁘다는데 왜 그러냐고. 목사님이 거짓말도 잘한다는 내 응수에 깔깔 웃으며 백합
을 한 아름 챙겨준다. 굳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서로의 마음을.
잘 가라고 흔드는 동생의 거친 손이 만선의 깃발처럼 힘차다. 혼자서 여기에 이르렀을 리 없
다. 나는 동생이 양보해 준 덕에 마음 놓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 동생은 가고 싶은 미대를
가지 못했지만, 그 손으로 바다라는 도화지에 푸른 온기의 내력을 그리고 있었다. 나도 힘차게
손을 흔든다. 이제야말로 응원의 마음을 켜켜이 담아서!
- 4 -
수필 대상
나무의 시선
푸르스름한 동살이 길을 깨운다. 부지런한 새들이 바람을 가르고 길섶의 풀들은 어제보다 더
자란 얼굴로 헤실거린다. 이 길 위에 누가 있을까. 걸어간 자는 돌아올까. 길 너머에서 길은 사
라질까, 뻗치고 이어질까.
뒤틀린 몸을 세운다. 나는 운치도, 품격도, 공간의 미학도 모른다. 번듯한 무엇도 되지 못한,
그저 시간의 겹이 남긴 형상이다. 그래도 벼름벼름 일어나 새잎을 다는 것은, 이 길 위에 너희
가 있고 손길과 눈길이 내게 닿아있기 때문이다. 너희를 따라 나의 시선도 움직인다. 살아가는
일은 엄혹하여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삶의 관성들은 저마다 꾸려나가는 통속의 하루를 무심
히 흘려보내기도 하지만 나는 너희가 남기고 간 땀내 나는 하루를 주워 오늘을 더한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길에 그들먹하게 내려앉은 햇살이 쨍하니 튀어 오른다. 어린이집
앞에서 우는 아이를 떼놓느라 젊은 엄마도 울상이다. 선생님이 나와서 아이를 안고 안으로 들
어간다. 일터로 향하는 엄마 얼굴에 늦봄의 햇살이 반들거리고 길은 둥그런 터널의 연속 같다.
아이와 엄마의 아침이 안쓰러워 내 장딴지가 움찔거린다.
길은 면면히 흐르고 나는 시간의 무게를 짊어진다. 지속의 양상은 달라도 길과 나, 숨탄것들
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닮았다. 지나가던 남학생이 펄쩍 뛰어서 내 가지를 휘어잡는다. 묵은
가지 하나가 녀석의 손에 부러진다. 키 자랑이라도 하려던 것일까.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에
같이 가던 아이들이 웃고 나도 웃는다. 아프기야. 이런 장난이 반갑기도 하다. 그 옛날, 나를
올라타고 한 몸이 되었던 아이들이 그리우니까.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 아이들에게서 그 시간의
유전인자를 찾는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길은 걸음의 집이다. 걸음이 쌓여서 길은 두둑해지고 걸음의 무게로 길은 움푹해진다. 길은,
걸음이 만든 웃음과 울음을 갈무리해 두었다가 또 다른 걸음의 온기가 되어준다. 네가 지나가
고 너희가 지나간다. 꼭꼭 밟으면서 걸어간다. 뜨겁게 발광했던 시간인들 없었을까. 떨켜를 준
비할 새도 없이 떠나보냈던 시간도 있었다. 한바탕 파랑이 이 길을 들쑤시고 휩쓸어 갈 때마다
뒤틀린 내 곁에서 길은 또다시 길을 냈다. 마침표를 찍어도 문장을 고쳐나가듯 너희의 삶도 새
롭게 고치고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 갈 수 있는 거니까.
저만치 다리를 절룩이며 걸어오는 너를 본다. 수레를 밀고 지나가던 마을 노인이 걸음을 멈
추고 네 무릎의 안부를 묻는다. 너와 노인이 내 둥치에 기대앉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생긴 대로 물가가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만 폭락한 건 대체 무슨 조화냐고. 인건비도 안 나오는
양배추밭, 쪽파밭 갈아엎는 대신 노숙자 식사 봉사장에 기부한 김 씨 이야기며 염증이 끓어오
르는 다리와 늙은 몸으로 궂은일 가리지 않고 앞장서서 봉사했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타인
을 향한 마음이 자신의 마음도 푼푼하게 풀어놓는지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너희에게 내 가장
이에서 노는 바람을 보낸다. 옹이 진 허리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시리기만 한데 이런 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던 길일까. 돌아오는 길일까. 한 젊은이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날 쳐다본다. 어느 밤
내 둥치를 안았던 청년이다.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지. 내 우듬지에 걸린 달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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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중얼거렸다. 꽃잎 흩날리는 봄, 창으로 들려오는 낭자한 웃음소리가 제일 견디기 힘들다
고. 하루의 노동이 통증으로 번지던 어떤 날에는 게으른 내일을 한탄하면서 나를 치고 들이박
고 길길이 뛰기도 했지. 홀로 외로웠을 너에게 달빛이 잘 비치도록 내 무성한 이파리를 슬며시
움츠린 걸 너는 알까? 이 기쁜 순간과 만나려고 그 힘든 시간이 있었구나, 할 때가 온단다. 내
일이 오는 속도가 누구에게나 같은 건 아니니까 기다려보자. 그런 말이 허랑하게 들릴까 봐 내
마음이 아팠다는 걸.
길이 없으면 길을 나서지 않았을까. 길을 나서지 않으면 고꾸라질 일도 없을까. 태생의 한계
를 안고 붙박이로 살아가는 나의 길은 무엇일까. 내 선 자리가 애초에 싹 하나 움터 이제껏 자
리한 것처럼, 길도 길이기에 굽이굽이 펼치는 거 아니겠나. 진창길이건 자드락길이건 에움길이
건, 길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으니 길은 흐른다. 어떤 삶이어도 각자가 감당할 몫이므로 노량
으로 걷든, 바장거리든 죽살이를 펼칠 일이다.
오늘도 노부부가 휠체어를 밀고 내 그늘 아래로 온다. 작은 벤치에 노인의 거친 손이 방석을
놓으면 굼뜨게 일어난 아내가 묵직한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분홍색 꽃무늬 방석은 늙은 아내의
꽃받침이 된다. 오랫동안 서로를 향한 발걸음이 묵직했으리라. 아내가 핸드폰을 열어 손주와
영상통화를 한다. 나도 허리를 구부려 들여다본다. 기척을 느꼈을까. 문득 아내가 나를 본다.
나는 짐짓 모른 척 이파리 하나, 그녀의 흰머리 위로 날려 보낸다. 아내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
선다. 초봄만 해도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떼던 걸음이 이제 제법 힘차다. 늙은 아내는 길을 끌
듯이 걷는다. 언젠가는 무거운 신을 벗고 맨발로 이 길의 소실점이 되겠지. 그래도 아직은 걷
는다. 아내 걸음에 맞춰 기우뚱거리는 길이 다정하다.
땅거미 지는 하늘로 시린 잔별 하나둘 돋는다. 바림질 시작한 어둠이 서서히 물들이는 정갈
한 수묵화에 달이 떠오른다. 발들이 돌아온다. 저마다의 본새로 어기차게 걸어온다. 사위었던
석양이 부지런히 구워내는 내일과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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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최우수상
그늘 한 점
한 남자가 벤치에 누워있다. 동네 공원의 인적이 뜸한 버즘나무 아래 그늘이다. 짙은 회색
골무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로 여의고 늙수그레한 모습의 중년 사내다. 남의 시선도 아랑곳없
이 훤한 대낮에 그늘을 이불 삼아 잠들었다. 아니면 자는 척하는지도 모른다. 빈집 같은 배낭
을 머리맡에 두고 후줄근한 옷차림과 거뭇한 얼굴로 보아 노숙자인가 보다. 그늘 밖으로 빠져
나간 발목이 땡볕에 따가운지 가끔 진저리를 치듯 몸을 움찔거린다. 후텁지근한 공기의 감촉과
웃자란 풀잎의 비린내가 뒤섞여 여름 한낮을 한증막에 갇힌 것처럼 사람을 녹진하게 만든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저 사내는 식사를 했을까, 하며 속으로 혼자 오지랖을 떤다. 근처에 소
문난 실비 식당이나 무료 급식소라도 있었든가 새삼 궁금해진다. 춘궁기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도시락이 없어 펌프 물로 배를 채우던 키 작았던 친구처럼 요기 대신 낮잠으로 허기를 달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밥벌이의 수모와 배고픔의 설움을 겪어본 사람에게는 사는데 먹는 일만
큼 어렵고 힘든 일도 없을 듯하다.
땡볕을 피해 찾아 들어온 그늘이겠지만 저 남자는 오히려 자기 그림자에 갇힌 무당거미 같
다.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고 지인들 눈도 피해서 숨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은폐
며 도피처인지도 모른다. 얼굴에 어둠의 그늘이 함지박만 하게 드리워졌다. 벽 한 귀퉁이에 걸
려있는 바짝 마른 안개꽃같이 곧 바스러질 것 같은 허무가 틈새마다 언틀먼틀 내비쳤다. 사내
도 그것을 아는지 봉쇄수도원의 수사가 된 양 침묵과 고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터다. 박하 향 같은 젊은 시절이나 화양연화의 호시절이 왜 없었
겠는가. 신기루 같은 꿈을 안고 투자한 사업이 크게 실패했거나 아니면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해고당했을 수도 있다. 혹시나 이혼이나 인간관계의 단절 같은 어망처망한 충격의 여파
로 저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질곡과 나락에 빠질 수도 있는 법, 그저 운이나 탓으로만 돌
릴 수도 없는 게 인간사다. 양지가 되지 못하는 그늘은 결핍이자 아픔이며,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자존의 흔들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날콩을 씹은 듯한 비린 표정을 짓거나 불한당
처럼 새벽에 경련이 찾아와 종종 잠이 깨는 이유도 그 후유증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뎃잠을 전전해야 하는 이들에게 그늘은 고맙고 편리하면서도 무겁고 불편한 음지이다.
그늘을 겪어본 사람은 그 아픔도 안다. 누군가의 그늘진 구석을 보는 순간 대뇌 편도체를 중
심으로 감정 회로가 활성화되어 동병상련처럼 심리적 통증이 일어난다. 약자나 빈자, 정당한
이유 없이 불공정한 처우와 대접을 받는 사람에게 이는 측은지심도 그와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밥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했던 일들, 굴레를 빠져나오고 싶어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아서 절망에 빠져본 적도 많았던 지난날이었다.
상처를 경험해 본 사람은 타인의 슬픔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웃음만이 아니라
울음까지 함께 끌어안을 수 있고, 즐거운 순간에만 머물다 가는 지인이 아니라 힘겨운 시간까
지 함께 견디어 주는 의인(義人)을 생각한다. 외로웠던 마음에 위로가 되고, 상실감에 빠졌던
앞날에 단단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늘 속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정 많은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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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기 때문이다.
그늘의 품은 엄마의 치마폭 같다. 우산 아래든 지붕 밑이든 햇빛을 피하거나 비를 맞지 않는
곳에는 어디서나 그늘이 있다. 진흙탕이건 바위투성이건 차별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는다. 불볕
더위를 피해 뛰어 들어왔다고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유효기간 만료처럼 찬바람이 불어 햇빛
을 찾아 떠나버려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강물이 그렇듯 바닥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스며들며
내려앉는 염화시중의 미소다.
살다 보면 때때로 그늘 한 점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손차양을 하기도
하고 부채로 이마를 가리고 가로수 밑을 찾아들기도 한다. 시골 마을 입구 커다란 정자나무를
지나가다 보면 그 그늘에서 잠시 머물고 싶고 품에 안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뜨거운 땀을
식히며 잠시 휴식과 원기 회복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어쩌다 삐거덕하고 상처 난 마음을 위로
받고 싶은 것도 그늘이다.
아버지에게도 그늘이 필요했다. 첩첩산중에서 가난을 훈장처럼 달고 태어난 것도 모자라 조
실부모하여 가족의 사랑마저 받아보지 못하고 성장했다. 뒷배나 디딤돌 하나 없이 어린 나이부
터 혼자 힘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가장으로서 가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부터 걸머져야
만 했다. 비록 가진 것 없이 태어났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마치 자기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
럼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땡볕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한 번쯤 누군가의 손이, 누군가의 품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싶다. 타오르
던 한낮의 열기도 해가 기울면 붉게 물든 노을이 찾아오듯 때때로 삶의 위안과 위로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자식들은 자기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살아생전 그늘 한점 되
어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늘 편안하고 쾌적한 그늘로 존재하다가 이제 영면하여 스스
로가 당신의 그늘이 되고 말았다.
더위 속에서 그늘은 시원하고 고마운 존재지만 겨울날의 그늘은 춥고 서글픈 고통이다. 어둠
이 있어야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듯 그늘이 있어야 밝음도 제대로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기
쁨과 슬픔, 빛과 어둠, 희망과 체념이 공존하듯이 늘 이중성을 품고 사는 게 인생이다. 인생 여
정은 흰 돌, 검은 돌을 꺼내는 순서라는 말이 있듯이 고난과 시련도 일시적일 뿐 누구나 고비
를 넘기고 일어서게 되어 있다.
아직도 남자는 벤치에 누워있다. 허벅지까지 아예 그늘에서 벗어나 따가운 햇볕이 드리웠는
데도 꿈쩍하지 않는다. 정면으로 마주치는 현실로부터 잠시 비켜나고 싶은 충동이거나, 눈앞에
닥친 시험에 맞짱을 뜨느라 오기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풍찬노숙이지만 저 그늘이
안식처이자 또 재기의 시험장이었으면 좋겠다. 저 사내도 언젠가 어둠의 그늘을 걷어내고 따뜻
한 햇살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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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최우수상
노둣돌, 삶을 품다
자각몽에 뒤척이는 염하(炎夏)다. 산마루 낮은 능선을 허무는 뭉게구름이 누구네 뒤뜰 먹감
나무 우듬지에 능청스럽게 걸렸다. 구붓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모관처럼 지붕을 얹은 토석담
이 열병식 하듯 좌우로 늘어서 갈 길을 안내한다. 더위 먹은 세상마저 그늘에 잠든 시간에 경
계선도 없이 지붕을 넘나드는 박새 소리만 요란하다. 기와집들이 즐비한 오래된 반촌이라 그런
지 고본상의 문자향처럼 고절함과 예스러움의 정취가 느껴지는 한옥마을이다. 서권기 가득한
어느 후손의 글 읽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담장 너머로 우렁우렁 들려올 것만 같다. 세월의 무게
감 때문인지 분명 사람 사는 마을인데도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와 적막이 풍경 속에 그득 들
어찼다.
솟을대문이 유난히 높다. 집주인인 대감마님이 타고 다니는 초헌(軺軒)이나 말이 집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대문 하단의 문턱도 가운데가 둥글게 내려앉은
요철형으로 만든 것도 그 이유다. 대문마다 높은 문턱을 만들어서 걸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발을 보고 신분을 감별했던 조선시대다. 나라님과 주인만이 말을 탄 채로 문턱을 넘을 수 있
었으니 지체 높은 명문가임을 솟을대문이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대문 옆에 편평한 바위 하나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함부로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없는
정결한 골목길에 커다란 두꺼비처럼 웅크리고 앉은 모양새가 낯설고 생뚱맞다. 거뭇한 덩어리
에 희끄무레한 바위 결이 사람 손을 많이 탄듯하다. 말을 타고 내릴 때 발돋움으로 쓰기 위해
갖다 놓은 하마석(下馬石), 우리말로는 노둣돌이다. 예전에는 이 같은 디딤돌을 대신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등을 내미는 전문 노비도 있었다고 한다.
흔하디흔한 돌덩이지만 쓰임새에 따라 존재의 의미가 달라진다. 온몸으로 무게를 떠받치는
받침돌이나 주춧돌도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평형감각을 잡아주는 버팀돌이나 굄돌도
있다. 냇가에서는 물을 건너는 징검돌이 되어주기도 하고 갯벌에서는 늪에 빠지지 않도록 노둣
길이 되어주는 돌들이다. 무릇 인간도 어느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본질과
가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남을 위해 등을 내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락에 곶감을 꺼내기 위해 바닥에 엎드리
거나, 남의 집 담장을 넘기 위해 등을 이용하는 사리사욕과는 다른 차원이다. 아무런 보상도,
조건도 없는 무자기(毋自欺)의 보시 같은 것이다. 눈앞에 닥친 고비를 넘어서기 위해 나를 밟
고 건너라, 일어서라, 다시 시작하라는 숭고함이다.
뒷배, 등받이, 가교, 발판이 되어주는 그런 일들은 짓밟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품는 일이
다. 품에 안는다는 것은 차거나 뜨겁거나, 더럽거나 위험한 것도 구별하지 않고 내남없이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숨겨둔 통증처럼, 부모가 나이가 들면 등허리부터 휘어지기 시작하는
것도 평소 그만큼 자식들을 위해 등을 내어준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무릎을 꿇거나 등을 내밀어야 한다면 아프고 슬픈 일이다. 좌표 없이 날아오
른 갈매기처럼 때로는 변덕스러운 세상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할 때가 많은 것이 인생길
이다. 밥벌이의 수모를 견디거나 배고픔의 설움을 참아내야 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건 서글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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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한 일이다. 누군가의 아들이면서 남편, 아빠인 가장의 입장이기에 어찌할 수 없었던 노릇이
다. 가족에게 내주어야 할 넓고 따뜻해야 할 등짝이 삶의 현실 앞에 외롭고 쓸쓸해지는 순간이
다.
비바람과 한설 삭풍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노둣돌이다. 비를 피하려고 우산 한번 써본 적
도 없고, 더위를 피하려고 그늘 한번 찾은 적도 없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욕심도 부리지 않
고 오직 베풀기만 할 줄 아는 부모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다. 태풍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한파 앞에서도 얼어붙지 않는다. 정언명령이라도 받은 양 주어진 자신의 위치를 한 치 벗어난
적이 없는 일종의 소명 의식이다.
노둣돌은 아무 말이 없다. 노예처럼 엎드려 흙발에 밟혀가며 오체투지로 살아야 하는 생이지
만 묵언 수행하듯 침묵과 고독으로 일관한다. 말없이 희생하면서 누군가의 생명과 가치를 키워
내는 보이지 않는 열정이다. 덮개돌이나 누름돌처럼 윗돌이 되지 못한 아랫돌의 설움을 불평하
거나 하소연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바위의 몸으로 태어나 순결한 사랑을 품은
상징물이기라도 한 듯 그 희생은 끝이 없다. 힘들거나 서럽다고 도중에 중동무이하는 법 없이
돌부처처럼 천년만년이다.
살면서 힘든 고비 한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수호천사처럼 말없이 자기 등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어
얼마나 고맙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도 스스럼없이 나
를 돕고 나를 위해 곁을 지켜준 노둣돌이었다.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진 나에게 언젠가는 멋지
게 부화되리라 위로하면서 푸른 새알처럼 자기 가슴팍에 품어준 사람들이다.
그 징검돌이 없었다면 물살 거센 개울을 건너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 돌계단이 없었다면 웅
덩이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 섬돌이 없었다면 널찍한 대청마루에 오르지도 못했
을 것이다. 내가 발을 디딜 때마다 그 충격과 무게에 상대적으로 아플 수밖에 없는 것도 노둣
돌이다. 내가 우선이고 나 아닌 당신은 모두 타인이어서 당연히 그래도 되는 양 무심코 밟고
올라타 그 등을 오르내렸지만 정작 당신의 고통과 희생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식도 하지 못하
고 산 것도 사실이다.
누구에게 등을 내주고, 누구의 등을 밟고 여기까지 왔는지 한 번쯤 되돌아본다. 어깨 한번
쉽게 내어주는 적 없고, 조건 없이 손길 한번 뻗친 적 없고, 숨김없이 마음 한번 보여주지도
못하고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었는지 후회가 남는다. 바람과 햇볕 없이 저 혼자 피는 꽃
이 없듯이 너와 내가 서로 위로와 힘을 얻어 헤쳐가는 세상에 비록 걸림돌은 아니었을지라도
노둣돌이 되지 못한 게 아쉽다.
낮은 그림자 하나 품고 저 폭염에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둣돌이다. 욕심 다 비워
내고, 집착 또한 다 내다 버리고 수행자 길을 걷듯 온유하고 너볏하다. 무잡(蕪雜)한 일상을 잘
견뎌내는 것도 결국 산다는 일이다. 밟혀가면서도 저 넉살맞은 여유, 어디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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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최우수상
무릎의 의미
바람이 불면 온몸이 서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는 것들이 있다. 그래도 꺾이거나 부러지는
일 없이 흔들리는 몸을 세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갈대나 대나무처럼 속이 빈 것들은 마디
가 있어야 한다. 무릎이 동물들의 몸을 일으키듯 식물은 마디가 있어야 초록 등뼈를 세운다.
그래서 마디가 무릎이다. 군중처럼 늘어선 마른 갈대들이 무릎을 맞대어 한 생을 온통 서걱거
리며 살아가고, 동네 어귀 느티나무가 옹골찬 무릎으로 허공에 여린 가지를 뻗어 우람한 그늘
을 만드는 것이다.
아침 해가 바다에서 불뚝 일어선다. 무릎의 힘이다. 아기가 기어다니는 첫 보행법이고, 풋잠
을 자거나 귀를 간질이며 귓밥을 내줄 때 꺼내놓는 엄마의 사랑법이 무릎베개다. 그 옛날에 어
머니들이 대청마루를 손걸레로 청소하면서 엎드려 이동하는 방법도 무릎걸음이다. 누이가 출근
길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는 구두가 아니라 무릎이 내는 소리다. 초원을 달리는 말들이 땅을
구르고 거침없이 장애물을 뛰어넘는 저 동력과 기상은 단단한 무릎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무릎이 경계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의자나 벤치도 발이 땅에 닿아야 안정감이 있고, 식구들
둘러앉은 밥상도 무릎을 맞대야 공유감을 준다. 겨울 눈밭이 무릎 높이까지만 쌓이면 온 세상
이 하얗게 변할 수 있다. 잔디밭이나 꽃밭의 울타리도 무릎 높이 정도면 시선 거슬림 없이 경
계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물리적 높이면서도 함부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심리적 한계로 충분하다. 여자의 치마가 길고 짧다는 기준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테두리 안
을 이르는 말도 무릎의 아래인 슬하(膝下)다.
신 앞에 기도할 때나, 108배나 오체투지를 할 때나, 임금님 앞에 엎드려 상소를 올릴 때의
무릎은 경배의 마음이다. 어른에게 하는 큰절이나, 무사들이 상관에게 한쪽 무릎을 꿇는 행위
는 극진한 인사법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프러포즈할 때 꿇는 무릎은 열애의 감정이
다.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추모비에서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사죄의 상징성으로 무릎을
꿇었다. 조선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차가운 땅바닥에 두 무릎을 처박고 삼궤구고두례(三跪九
叩頭禮)를 할 때는 굴복과 굴종의 치욕스러운 의미였다.
세상을 견디는 힘은 무릎에서 나온다. 정호승 시인은 ‘무릎을 꿇어야만 걸을 수 있고, 스스
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라고 했다.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서나, 사냥을 위한 맹
수들도 빠르고 정확한 공격을 위해서는 무릎부터 꿇어야 한다. 무용수가 도약하여 공중에 머무
르는 발롱 동작도 수천수만 번 무릎을 구부려 도움닫기를 반복 연습한 결과다.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등짐 지게를 물미작대기 하나에 의지해 일어서는 일도 중력을 거슬러 직립을 향한
무진무궁한 무릎의 힘이다. 무릎만 멀쩡하면 이를 악물고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일이기
에 상처와 고통을 잘 견뎌낸 무릎일수록 힘이 세다.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삶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가야의 소녀 ‘송현’도 무릎 꿇는 일을
많이 한 시녀나 노비로 살다가 주인 따라 순장되었다. 사막의 낙타도 시시때때로 주인 앞에 자
세를 낮춰야 하므로 양쪽 무릎에는 푹신한 혹 같은 것이 삶의 옹이처럼 붙어 있다. 사람의 무
릎뼈로 만든 몽골의 민속악기 야산갈링은 광야를 달리던 영혼들의 속울음이며 초혼의 몸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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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에 포로나 식민지 노예들 앞에서 “무릎을 꿇어라!”라는 첫 일성에 뿌
리가 통째로 뽑혀 나온 듯한 삶의 허무감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살다 보면 무릎 꿇는 일도 있고 때로는 무릎 꿇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무릎이
라도 꿇어서 갈등과 고민이 속 시원하게 해결될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며, 떠난다는 그녀
를 붙잡아 앉힐 수만 있다면 백번 아쉬운 소리보다 무릎 한번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무릎
을 꿇어야 꽃향기도 맡을 수 있고 내가 낮아져야 눈높이도 맞출 수 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
르고 마른 대지를 품을 줄 아는 것도 무릎을 꿇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맨발보다 더 슬프고 발목보다 더 위태한 것이 무릎이다. 정강이와 넓적다리 사이의 무릎은
단단한 것 같지만 오히려 연약한 인대 연골로 둘러싸여 늘 조심스럽다. 날씨가 추우면 제일 먼
저 찬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며 험한 길 걷다 쓰러져 피를 흘리는 것도 무르팍이다. 젖 먹던 힘
을 다해 노력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을 때 그 절망과 좌절감으로 힘없이 무릎은 꺾이고
무너질 듯 바닥으로 쓰러지고 만다.
무릎이 마음의 관절이다. 사람이 사람을 무릎 꿇리는 일보다 못된 짓은 없다. 물리력이나 권
력을 행사하는 때도 있지만 상대방의 처지나 약점을 이용하여 알게 모르게 무릎을 꿇게 만드
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말 한마디, 손가락 하나로도 상대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예민한 감정이다. 사람 사이가 어찌 내 마음과 똑같을 수 있으랴. 무심코
했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상대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 일이 없는지, 혹시나 상대가 무릎을 꿇
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도록 계략을 세운 일은 없었는지 괜히 가슴이 뜨끔해진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제일 먼저 무릎부터 아파져 온다. 어깨 위에 올리고 다녔던
고단하고 쓸쓸했던 삶의 무게감에 무릎이 다 닳아 뻗정다리가 된 것이다. 비가 온다거나 날씨
가 궂은 날은 무릎관절이 시큰거리며 쑤셔오는 것도 몸의 무게중심과 평형감각이 무너져가는
신호다. 완강했던 생의 의지나 자존마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지면 무릎끼리 서로 바깥으로
벌어져 내반슬(內反膝)이 되어간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이라도 밀려드는 날은 벌어진 무릎 사이
로 고개마저 점점 파묻힌다.
내 생애에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는 자부심은 명예가 아니라 오만과 독선의 일종이다. 정의
나 진리를 위한 결기라면 다행이지만 자존과 자만을 위한 객기라면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
니다. 위선과 허위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허세와 허영은 갖고 살아오지 않았을지 되돌아
반성하게 된다. 사느라 힘들고 지쳐 외로운 이웃, 낮은 자와 소외자들을 위해서 기꺼이 무릎을
내어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은 앞으로도 언제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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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문.pdf
PDF 첨부 본문
부산광역시 동래구 공고 제2026-1147호
「제6회 동래구 우하박문하문학상 전국 공모전」
수상자 공고
「제6회 동래구 우하박문하문학상 전국 공모전」 개최 결과 수상자를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 수상자 : 2명
구 분 성 명 작 품 명
<도래솔>, <바다의 안부>,
대 상 조현숙
<나무의 시선>
수필
<그늘 한 점>, <노둣돌, 삶을 품다>,
최우수상 허정진
<무릎의 의미>
※ 작품평론 부문 수상자 없음
○ 심사위원
심사부문 심사위원장 심사위원(가나다순)
수필, 작품평론 최홍석 김정화, 정경수, 정인호
2026년 9월 23일
동 래 구 청 장